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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na/photo

1st 포토북 「코지하루」 2만자 인터뷰




2만자 인터뷰 엄청 기네요@_@..


좋은 내용도 많았고, 팬들 많이 생각해줘서 참 고맙더라구요.

현실적인 모습이 좋기도 하면서 조금은 쉽게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서비스 정신에 대해서는 쓴쑻...

잘 몰랐던 냥냥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네요.


의,오역 많아요T_T..

포토북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컷 하나만 올릴게요~









―1988년 4월 19일. 버블 경기 한가운데, 도내의 병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후에 「코지하루」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코지마 하루나의 탄생이다.


「좋겠다~버블(웃음). 스태프분에게 버블시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즐거울 것 같아~라고 생각하거든요. 화려한 세계를 좋아하니까, 버블시대에 태어나 보고 싶었어요. 100만 엔을 가지고 택시를 세우는 거죠? 」


―그건 과장입니다(웃음). 코지하루의 착각은 제쳐두고, 90년대 초 버블은 붕괴. 일본은 긴 불황의 시대로 돌입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코지하루는 매일을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하하. 즐겁고 좋았어요~」


―즐거운 것은 코지하루의 삶이네요(웃음). 어떻게 하면 코지하루처럼 인생을 즐겁게, 그리고 살짝 경쾌하게 살 수 있을까?


「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팔랑팔랑 춤추는 나비를 뒤쫓아 가는 것 같은 인터뷰가 시작됐다….



■아무리 낮은 돌이라도 뛰어넘고 싶지 않았다■



―코지하루의 어머니는 임신 중, 딸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매일같이 획과 균형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자아이라면, 봄에 태어났고, '하루나'로 하자고 결정했다고 해요. 태양처럼 밝은 아이로 성장해줬으면 해서…였던가? 하지만, 센스가 좋아요.

   제 연령대에는 그렇게 많은 이름이 아니고, 시대를 앞서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 코지마가의 장녀로 태어나 많은 애정을 받고 쑥쑥 자랐다.


「몹시 평범한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사이타마의 서민(웃음).」


―마이페이스로 느긋한 성격은 그 무렵부터 변하지 않았다. 운동은 서툴렀지만, 병이나 큰 부상이 있던 적도 없는 건강한 여자아이였다고 한다.


「부러진 적도 없었고, 맹장수술도 하지 않았고, 어딘가 꿰맨 적도 없어요」


―코피를 흘린 적도?


「음, 아마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시궁창에 빠진 적은?


「그것도 없어요(웃음)」


―엉뚱하지 않은 아이였어?


「주차장에 가면 돌이 두 줄로 줄지어있잖아요」


―통행금지의 연석?


「네. 그런 걸 뛰어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했어요」



【주차장에 있는 돌을 뛰어넘는 의미를 모르겠어요 거기서 넘어져버릴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뛰어넘고 싶지 않아?


「어린 아이는 턱이 있는 곳을 뛰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의미를 전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넘어져버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군자는 위험한 곳에 가까기 가지 않는다』라고도 말하는 걸까. 무리하지 않고, 경쾌하게 사는 코지하루의 인생관은 유년기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 때부터 계속 공주님이 되고 싶었다■



―당시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어?


 「대부분 집안에서 놀았네요. 치장하거나 화장에 관심을 갖고, 엄마의 립스틱을 멋대로 쓴다던가. 

    소꿉놀이나 옷을 갈아입히는 인형도 정말 좋아해서, 정말로 '여자아이'라는 느낌이네요. 활기차게 밖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1살 아래의 동생과는 밖에서 놀았지?


「동생은 집에서 TV 게임(웃음). 『마리오카트』,『동키콩』,『뿌요뿌요』…. 『스트리트 파이터2』에서 대전도 했어요. 그리고, 축구와 프로 레슬링 경기를 함께 보기도 했어요.」


―소년문화도 순조롭게 받아들였네.


「왜지? 그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 재미있다던가, 의외로 생각한다던가, 아이인데도 생각했던 것일지도. 단순히 미하(ミーハー)였던 것도 있지만(웃음) 」


(※ミーハー : 유행에 민감하고 남의 말에 동조하기 쉬운 사람.)


―낯을 가리고 사교적인 타입은 아니었지만, 늘씬하고 키가 큰 예쁜 소녀는 유치원에서도 두드러진 존재였다.


「학예회에서 알라딘 공주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그다지 자신이 좋아하는 공주가 아니어서 쇼크였어요.

   공주는 흰색이나 핑크색의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반짝반짝한 티아라를 쓰고 있는 이미지였는데, 뭔가 달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공주는 코지하루의 고정 포지션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은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을 잡은 공주님보다는 주인공의 옆에서 찬란한 모습을 하고 이야기에 화려함을 더하는 공주님이다.


「그러네요. 그렇게 에너지가 있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히로인의 공주라면 대사도 적고(웃음)」


―장래의 이야기가 되지만, 코지하루가 솔로 가수나 솔로 아이돌이 아니라 그룹 아이돌의 "미모 담당"에 자신을 거두어 두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은, 그런 이유도 맞을까?


「음~, 확실히 편해요(웃음)」



■한 발 앞서 가는 미하 소녀, 염원의 연예계 데뷔■



―초등학교에 입하하면, 그 미하가 점점 실력이 향상된다.


「보기에도 어른스럽고, 내용도 조숙했기 때문에, 동급생은 『따라갈 수 없어』같은 공기가 돼서. 조금 지나치게 진행해버렸어요.」


―그런 미하에 조숙한 소녀가 연예계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무로 나미에씨와 SPEED씨가 『THE夜もヒッパレ』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화려하고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마음껏 영향을 받고, 엄마와 둘이서 댄스 스쿨에 다니게 됐어요. 지금은 작은 아이도 댄스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고, 혼자만 어른들 사이에 섞여서 춤췄어요」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싶어!」라고 주장한 것은 있었어?


「그렇게 열정이 있던 것은 처음이 아닐까. 그 후의 인생을 포함해도, 가장 의욕이 있었을지도(웃음).

   히로인의 여자아이가 아이돌을 목표로 연예계 데뷔하는 만화에도 영향을 받아 나도 데뷔하고 싶어!라고 날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4학년 여름에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전국 오디션』을 받았어요.」



게임과 프로 레슬링의 정보를 알고 있으면 「재밌어」라는 것을 아이인데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일본 전국 5만 명 이상의 참가자를 모은 거대 오디션. 거기에 코지하루도 참가했다.


「도쿄 국제 포럼에서 심사가 있었고, 그때 마키노 안나씨 앞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아, 액터즈의 안나씨다!알아!』라고. 미하니까(웃음). 

    2차 전형에 남아서 다음은 무대에서 한 사람씩 한 소절 노래를 불렀어요」


―「만나고 싶었어~♪」정도?


「그 정도였어요(웃음). 최종적으로 10명 정도까지 남아서…」


―결과는?


「결국, 그랑프리는 떨어져서 특별상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오디션 시드권을 받았는데, 제2회는 개최되지 않았네요. 그야말로 나 다운 에피소드네요(웃음).」


―한 발짝 앞에서 꿈이 깨져버린 코지하루는 어머니의 권유도 있고, 그 이후에도 다양한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형 연예 사무소에 소속하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후반 정도부터 대규모 그룹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TV에서 오락 같은걸 하거나, 반년에 1회 정도의 페이스로 라이브 활동을 하거나 오리지날 곡도 있었네요.」


―꿈에 그리던 아이돌 인생의 첫걸음이 드디어 시작된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그룹에서는 연소조였기때문에, 연상의 아이에게 귀여움을 받는 게 즐거웠어요.」


―당시, 레슨은 있었어?


「있었지만, 친했던 아이가 오지 않게 돼버렸기 때문에, 저도 중간에 가지 않았어요.」


―일이라는 의식도 그다지 없었어?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주변은 모두 진지하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저는 뚜렷한 목표도 없었고 방과 후에 와글와글 노는 친구가 생겨서 즐거워~정도의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친한 친구가 도중에 그만둔 타이밍에 저 또한 페이드아웃했습니다」


―그 당시를 다시 생각하면?


「어쩐지 모르게 연예계라는 것을 체험해 본 걸까? 수업기간 같은 느낌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즐거웠고 그때 배운 건 AKB에 들어와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괴롭힘 당한 경험은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중학교에서 가급적이면 눈에 띄지 않도록 살았어요. 교칙이 엄했기 때문에, 교복 치마도 길고 블라우스는 둥근 옷깃이 지정. 운동은 서투르기 때문에 부 활동은 영어부에 들어갔어요. 

    활동은 부실의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거나 외국 영화를 일본어 더빙으로 보는 정도로(웃음). 정말로 수수한 중학생이었다고 생각해요.」


―코지하루 왈 「별로 말할게 없어요」라는 수수한 중학교 생활. 유일한 즐거움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과 스티커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고, 주위는 논 투성이. 노는 장소도 거의 없었어요.」


―고등학교에서 친구는 생겼어?


「지금까지 접한 적이 없는 타입의 아이들이 많아서 친해질 수 있을지 불안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하라주쿠에서 놀거나, 조숙하기도 했고(웃음). 하지만 친구들은 많이 있었어요.」


―사이좋게 지냈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어쩐지 그 자리에 맞춰서 후왓~하고」


―순응 할 수 있어(웃음)


「어떻게든 돼버려요.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던지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아요. 놓여진 자리에서…」


―『피어나세요』!?    (置かれた場所で咲きなさい가 책 이름인가 봐요)


「그때는 피지 않았지만(웃음), 놓여진 위치에 대해서 불만을 갖지는 않아요.」



【TV나 만화에 영향을 받아서 나도 데뷔하고 싶어!라고 매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유연성이 있기 때문에 코지하루는 어디에서라도 금방 잘 어울릴 수 있고, 적을 만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해도 눈에 띄는 존재인 것. 괴롭힘 당한 적은 없었어?


「꽤 있었어요. 말투도 푹신푹신하니까 『공주병』이라고 말하거나. 중학교 때 다른 중학교 선배에게 주목돼서 불려간 적도 있었고…」


―불려가서 어떻게 됐어?


「에? 가지 않았어요」


―화려하게 스루~(웃음)


「고등학교 때도 체육계 여자아이에게 들리도록 욕을 듣거나, 괴롭힘도 당했어요. 아, 생각났다. 고등학교에서는 남자에게도 괴롭힘을 당했어요.

   처음에는 호의를 갖고 다가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여자도 포함해서 집단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했어요 하지만, 「뭐라고 말하고 있구나~」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어?


「전혀요. 왜냐하면, 지금 들었을 때까지 신경 쓰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 했을 정도인걸요. 괴롭힘 당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뭐라고 말하고 있구나~』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어요.」


―덤벼드는 불합리한 일은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건 어렸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네요.


「변하지 않았으려나?」


―중·고등학교 시대에, 다시 연예계를 목표로 하고 싶다는 기분은?


「음~, 있었으려나. 하지만, 이대로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보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거는 없지만,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조만간 도망쳐서, 화려한 곳에 가는 걸까하고?


「어디에 있어도 이상한 자신감이 있거든요. 전혀 근거는 없었지만」


―그건 왜일까


「음, 왤까요?」


―하지만, 실제로 연예계에 돌아온다.


「확실히. 어째서일까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강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나는 거기에 돌아갈 수 있겠지..라고. 그렇게 바라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운이 적합했다고 생각해요.」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지, 아니면 자기분석을 착실하게 하고 있는건지. 혹은 그 양쪽인지. 어쨌든, 코지하루는 「언젠가 연예계에 돌아온다」라고 하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AKB48 오디션을 받은 것은 문턱이 낮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코지하루에게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당시에는 독자 모델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했어요. 하라주쿠에도 자주 놀러 가고 있었기 때문에, 꽤 스카우트도 받았거든요. 그러자, AKB48의 사무실 사람이 말을 걸어왔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생각했어!?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무소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연락이 왔지만 무시했고.  

하지만, 하라주쿠 역의 경사진 곳에 『아키하바라 48프로젝트 1기생 모집』이라고 적혀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전부터 신경 쓰였거든요. 이건 뭘까? 라고…」


―포스터에는 아키모토 야스시씨의 사진도 실려있었네요.


「아키모토씨는 이름 정도 밖에 몰랐어요(웃음). 톤네루즈 프로그램에 나오는 안경을 쓴 업계의 사람이라고 인식한 정도.

   하지만 그 포스터에는 모닝구 무스메의 안무가로 유명한 나츠 마유미 선생님의 이름도 쓰여있었고, 왠지 굉장한 것 같아~라고 생각했어요.」


―변함없는 미하(웃음)


「그런데 『휴대폰의 사진에서도 보낼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었기 때문에, 그럼 받아 볼까라고」


―문턱이 낮은 것이 받아보자고 생각한 계기였어?


「그래요(웃음). 만약, 제대로 전신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면, 아마 받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라? AKB48의 사무소 사람에게 스카우트됐을 때는 계속 거절하고 있었는데….


「같은 사무소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자신이 이력서를 보내버렸어요(웃음).」


―『AKB48 오프닝 멤버 오디션』에서 아키모토 야스시와 나츠 마유미의 심사를 받았다.


「모두와 다른 곡으로 하자라고 생각해서 굳이 『渡良瀬橋』를 골랐어요. 그러자 제 앞의 앞의 아이도 『渡良瀬橋』를 불렀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반대로 생각했는데(웃음).


「여러가지 생각해서 그 곡을 선택했는데 왜~!?라고(웃음)」


―자기PR에서는 어떤 것을?


「이력서에 특기는 카고 아이씨의 성대모사라고 적었더니 나츠선생님께서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셨거든요.

   긴장감 있는 장면과 공기 속에서 했더니 나츠선생님이 『닮았어요』라고 한마디. 그 일은 굉장히 기억하고 있네요~」


―응모 총수 7924명 중에서, 코지하루는 최종 합격자 24명으로 꼽힌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나츠 마유미 지도 아래 레슨이 시작됐다.


「굉장히 엄했어요. 지금까지의 AKB의 활동을 돌아봐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12월 극장 오픈까지가 가장 힘들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는데, 다음날부터 매일 레슨이 시작이라니 싫잖아요(웃음). 『에!? 여기까지 진심이야?』라고 초조했어요.」


―받는 문턱은 낮았지만, 막상 가보니 의외로 힘들어서 놀랐어?


「레슨에 지각해서 그만둔 아이도 있었어요. 정말 해낼 수 있을지 불안했었는데, 그만둔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먼저 말할 수 없는 타입이니까…. 

  『그 아이 없어졌네』라고 듣는 것도 싫고, 당시에는 흘러가는 대로 계속하고 있었다는 느낌이었어요.」


―멤버는 처음에 나츠선생님이 쓴 책을 받아 읽었지요?


「네. 도중까지 읽었어요.」


―아하하(웃음)


「하지만, 나츠선생님의 안무는 지금도 잊지 않고, 옛날 곡이라도 바로 춤출 수 있어요. 춤추고 있어도 아이돌이구나, 라고 가장 느낄 수 있는 게 나츠선생님의 안무에요. 

   안무만이 아니고 무대에서의 동작이나 표정, 정신적인 강함도 배웠어요. 그런 기초를 주입시켜 주셨다고나 할까. 『눈에서 빔, 손에서 파워, 모공에서 오오라』라는 나츠선생님의 말이 있어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아,나왔을지도!? 라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어요(웃음).」



■팬티 보여주는 집단? 그대로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션을 받았으나 그만둔다고도 말할 수 없었던 코지하루에게 기회가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クラスメイト』라는 유닛곡으로 나올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레슨 장소에 아키모토씨가 와서….

   그때의 일을 굉장히 기억하고 있는데, 난색의 패치워크의 자켓을 입은 아키모토씨가 레슨을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유닛곡이 『スカートひらり』가 됐어요.」


【만약 전신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면 AKB48의 오디션을 받지 않았을지도】



―아키모토씨의 판단으로?


「음, 그건 모르겠지만, 마이마이(오오시마 마이)와 저 두 사람이 『スカートひらり』에 추가되었어요. 어라!? 라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동기부여도 또 올랐고(웃음). 

   그래서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나갈 계기도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성 당시에는 팬도 적었지만, 「그래도 매일매일이 즐거웠어」라고 되돌아 본다. 평범한 고교생은 체험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충실감도 있었다.


「그 시절은 팔리고 싶다던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어요.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아이돌을 하고 있는 자신이 기뻤고, 팬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웠어요. 정말로 단지 그것 뿐이었어요.」


―TV프로에서 『スカート、ひらり』를 피로했을 때 일부에서 「팬티 보여주는 집단」이라고 불렸었죠. 분해서 눈물을 흘리는 멤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의 코지하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어?


「전혀 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러한 목적이 있었고, 미니스커트 의상을 입고 있었잖아요. 저는 『아키바계로 홍백가합전에 나와서 분했다』라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당시 AKB는 그 정도의 지명도였는데, 홍백에 출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결코 자신을 비하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아키하바라는 굉장히 유행하고 있었고, 최첨단 도시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오히려 괜찮은 거리지.


「그럼요. 그런데, 아이돌 팬들은 모두 체크 무늬의 셔츠를 입고, 스카프를 매고 있어…같은 이미지로 오해 받는 게 정말 많았어요. 그게 굉장히 아쉬웠어요.」


―당시에는, "아키바계"라는 것에 아직 세상의 편견이 있었는지도.


「저희가 "아키바계 아이돌" 이라고 듣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세련된 거리에 가면 『배낭을 짊어지고 종이봉투를 가지고 있죠?』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게 조금 분했네요.」


―실제로 그런 사람은 없는데


「맞아요! 그런 사람 한 명도 없는데. 하지만, 초기엔 그런 이미지를 갖기 십상이었어요.」



【「팬티 보여주는 집단」도 「홍백의 아키바계」도 전혀 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지하루 자신은 「아이돌은 촌스러워」같은 편견은 없었어?


「편견?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아이돌을 좋아했고, 팬으로서 콘서트에 간적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오해를 할 때마다 아까워~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새롭고 즐거운 장소니까 선입견 갖지 않고 한번 봐줬으면 모두 빠질텐데~라고」


―코지하루는 상냥하고 팬을 생각한다. 누구도 차별없이 대하고 누구나 친하게 지낸다


「왜냐하면 팬분들은 누구라도 '귀여워' 라고 생각하거든요.」


―슬쩍 그런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코지하루의 주위는 항상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넘치고 있다.



■절친한 친구의 졸업 이제부터는 싸움이다!■



―극장 오픈에서 잠시 지나, 코지하루는 '귀엽고 조금 천연'이라는 캐릭터로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조그만 냥냥』과『자연현상~』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미언(?)도 탄생했다.


「그건 정말로 어떻게 됐던 시절(웃음)」


―당시, 코지하루의 옆에는 항상 코마타니 히토미(전AKB48 졸업생)이 있었다. 지금도 절친한 친구인 멤버다.


「피-요(코마타니)와는 굉장히 사이가 좋았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전화로 말하고 도중에 자거나(웃음). 자주 묵으러 오기도 했어요.」


―마음이 맞았네요


「집이 가깝고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고, 관점이나 웃음 포인트도 비슷했어요. 그리고, 노래방에서 아이돌 곡의 선택을 함께 했던 것도」


―당시에는 어떤 생각을 했어?


「정말로 바보여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쩐지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있었고, 어쩌면 팔리지 않을까~라고 태평하게 생각했어요.」


―자각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시기?


「맞아요. 피-요와 꺄악꺄악하고 있는 것이 즐거웠다고 할까. 누구를 위한다는 의식도 없었고, 책임감도 자신에게는 없어서 순수하게 활동을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팀A의 실질적 리더를 맡았던 오리이 아유미가 졸업 할때,「나도 상담하고 싶었지만, 고민이 없었어」라는 것은 네타가 아니라 본심?

 

「정말로 고민이 없었어요!」


―하지만, 매일 즐겁게 활동해 온 코지하루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08년 10월. 팀A 『ただいま恋愛中』리바이벌 공연의 최종일에서 코마타니 등이 졸업을 발표한 것이다.


「친한 멤버가 점점 졸업함에 따라 즐거운 시대는 이제 끝났어…라고 생각했어요. 되돌아보면 어느 때도 전부 즐거웠지만요(웃음). 하지만 피-요가 졸업한 건 정말로 쓸쓸했어요.」


―다음 달, 마음의 안식처였던 친구는 AKB48을 떠났다.


「졸업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AKB48이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붙잡지도 못하고…. 단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두에게 뭔가 해줄수 있는 게 있었을까라고 생각해요. 

   힘이 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 뭔가 해줄 수 있었으면…하고」



【친한 멤버가 점점 졸업함에 따라 즐거운 시대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를 잃은 상실감은 컸어?


「네.그래서 이제부터는 싸움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오, 코지하루의 의식에 변화가!?


「음, 변했다고 할까? 별로 기억이 안 나요(웃음). 하지만, 당의 선발 멤버는 꽤 반짝반짝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장소에 나는 맞지 않아~라고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 어리광 부릴 수 없고,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고, 확실히 하지 않으면, 이라는 의식이 된 게 아닐까? 잊어버렸지만(웃음)」


―본인은 자각하지 않았지만, 코마타니 히토미가 졸업하는 타이밍을 전후로 코지하루의 일인칭은 『하루나』에서 『나』로 변해갔다….



■주위가 시끌벅적하고 흐름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AKB48』라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세상에 퍼진 한가지 계기가 있다. '08년 10월에 발매된 10번째 싱글 『大声ダイヤモンド』. 

    많은 멤버들이「터닝포인트였다」라고 회상하는 AKB48 브레이크의 계기가 된 곡이다.

 

「이 노래, 어쩐지 TV에 많이 나오고 있네~라고 생각했어요.」


―당사자의식(웃음). 그 때는 기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냥 주변도 시끌벅적하고 있고, 지금까지와 조금 뭔가 다를지도…라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같은 시기에 칸무리방송도 시작했고, 중고등학생에게도 꽤 알려졌어요. 그래서, 이건 뭔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어요.」


―계속해서 11번째 싱글『10年桜』는 판매매수 10만 장이 넘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 요미우리 랜드에서 열린 이벤트에는 많은 팬이 몰려들었다.


「점점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와아, 굉장해!』라고(웃음). 그래서, 어라!? 이건 조금 흐름이 바뀐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어요.」


―냉정(웃음). 흐름이 바뀌어서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어?


「음, 변함없이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어요(웃음). 그냥 흐름이 바뀌는 것은 그때 굉장히 느끼고 있었어요.」


―AKB48 역사의 과도기. 코지하루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냉정한 눈빛으로 현재 상태를 객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코지하루도 냉정해질 수 없는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해보자!라는 마음은 항상 있어요 스테이지에서도 AKB의 활동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얕잡아 보게 하고 싶지 않아 나라도 할 수 있어!■



―AKB48을 말하는데 피할 수 없는 것이 「선발총선거」다.

  무대 위에서 울음을 터트리거나,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멤버도 있는 가운데, 코지하루는 절묘한 균형 감각으로 매년 심각해지는 것을 빠듯한 곳에서 회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까지 심각한 장면을 가급적 피해서 살아왔으니까요(웃음). 그런 힘들 때나 괴롭다고 생각할 때는 마음을 없게 만들어요. 자신에게는 싫은 일이 있더라도, 되도록 없게 만들자고. 

   그렇게 극복해온 곳도 있어요. 하지만, 총선은 팬분들이 열렬히 응원해주시고, 악수회에서 『투표했어』라던가『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모두의 성원에 제대로 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지난 5회 출전해서, 6위·7위·6위·7위·9위로 매년 안정된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별로 드라마가 없어요(웃음). 하지만, 7위가 되었을때 느낀 것은 6명까지의 일이 많았다는 것이네요.」



【긍정적인 성적 매력은 기뻐해주니까 신나서 좀 더 하자라고 생각해버려요(웃음)】


―6위까지 잘렸어?


「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에 나갈 수 없는 게 분했어요. 우습게 보인 것 같아서…. 그러니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복수라고 할까, 나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경쟁심이 없어요」로 친숙한 코지하루가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해보자!라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콘서트 무대에서도, AKB의 활동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모두가 방심하고 있는 곳에서 일격을 가하자라는 의식은 있어요. 제가 이런 말랑말랑한 분위기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더욱…」


―얕잡아 보이기 쉬운 캐릭터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경쟁심이라기보다는 얕잡아 보이는 게 싫다고 생각해요(웃음).」


―총선거도 코지하루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순위와 관계없는 곳에서 복수하고 싶다는 희미한 마음의 발아는 그 후 코지하루의 재능을 크게 개화시키는 것이 된다.



【자신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아이가 성공한다】



―코지하루에게는 미모와 발언의 센스 외에도 AKB48라는 대가족 속에서 묻히지 않기 위한 무기가 있다. 그것은 셀프 프로듀스 능력의 높이다.


「AKB라는 그룹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2013년에 개최된 도쿄돔 콘서트 무대에서는 간호사 의상으로 『하트형 바이러스』를 불러 회장을 달아오르게 한 코지하루의 모습이 있었다.


「언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으면 도쿄돔에서 솔로 메들리를 한다는 것을 알고 과감히 해버렸어요.『바이러스』니까 주사기를 갖고 간호사 옷으로 노래를 부르면 절대로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해요. 어떻게 하면 손님이 기뻐해줄까 라던가, 어떤 발언을 하면 분위기가 오를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던가. 

   그 생각이 독선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능숙하게 빠진 아이가 AKB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 멤버를 보고 있으면 「그 아이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해?


「아니, 거기까지는….헤어스타일 정도라면 어드바이스 해줄 수 있지만(웃음)」


―항상 팬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집단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깊이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요구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제대로 제공할 수 있는 멤버가 무대에서 빛날지도 모른다.



■속옷 차림이나 팬티 노출에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2010년. AKB48의 브레이크와 개인 활동을 서서히 충실하게 한다. 

『MAQUlA』의 전속 모델이 되고, 『有吉AKB共和国』의 방송이 시작된 그 해를, 코지하루는 자신에게 있어서 '비약의 해'라고 되돌아본다.


「개인으로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었던 해라고 생각해요. 22세로 "냥냥"이니까, 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의식하고 있었지만(웃음)」



【'귀여워' 라는 말은 흘려버리지만 '재미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한다】



―미용·패션도 버라이어티도 해낼 수 있는 멤버라는 인식이 세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네


「지금까지 여러 사람에게 『미래를 빨리 결정하는 게 좋아』라고 하거나 아키모토씨에게도 『슬슬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말해주세요』라고 말해주셨는데요. 

   하지만, 계속 『즐겁다면 좋을까나』정도밖에 말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곳이 있지만….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건지 22살 때 알았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桜からの手紙』에서는 임신한 여고생의 역, 『マジすか学園2』에서는 풍속녀의 역할에도 도전. 아이돌이라면 별로 하기 싫은 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에는 저항이 없어요. 굉장히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아니고」


―확고한 자신이 있으니까?


「제가요?에에~그런 자신은 없어요. 분명히 섹시한 느낌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벗고 싶다던가 그런 의식은 없지만(웃음).

  하지만 『an・an』의 그라비아라던가 PEACH JOHN의 드레스가 벗겨지는 CM의 반향을 들으면 긍정적이고 밝은 성적 매력은 팬분들도 받아들여 줄 테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모두가 기뻐해주기 때문에, 신나서 좀 더 하자고 생각해버려요(웃음).」


―드라마 『メグたんって魔法つかえるの?』에서는 팬티 노출도 선보였네요


「절대로 이역은 자신에게 빠져버릴 거라는 자신도 있었고, 촬영 전부터 굉장히 기대했어요. 후쿠다(유이치)감독님에게도 『팬티는 매회 바꾸죠』라고 말하고」


―자신이 의견을 낸 거야?


「팬티 노출을 앞세우고 있고 볼거리 중 하나인데 매번 같으면 아쉬워하는 사람이 속출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저를 신경 써 주셔서 한 번만 찍으면 좋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하셨지만, 『거기는 매회 바꿔보죠』라고 주장했어요.」


―웃거나, 기뻐해주거나 엔터테인먼트가 된다면 내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따져보면, 그것은 코지하루의 서비스 정신일 것이다.



【'귀여워'보다는 '재미있어'라고 듣고싶다】



―서비스 정신의 왕성함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엿볼 수 있다.『有吉AKB共和国』에서는 MC를 맡은 아리요시 히로유키와의 교섭이나 보케발언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아리요시씨와 함께 일을 시켜주셔서 굉장히 공부가 되고 있어요.『이럴때는 이렇게 돌려주고 싶다』라던가, 모노보케를 해서 아리요시씨가 웃어주면 『아、지금 좋았어』라고」


―옆에서 배우고 있어?


「뭐..몸에 붙지는 않지만(웃음). 하지만 얼마전에 아리요시씨가 『처음에는 이렇게 재미있는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말해주셨어요.」


―지금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주고 있구나,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기뻤고 좀 더 열심히 하자!라는 기분이 되었어요. 저는, 사람에게 『재미있네』라는 말을 듣는게 가장 기뻐요.」


―에!?그랬어요?


「'귀여워'라는 말은 흘려버려요. '아름다워'라는 말을 듣는건 부끄러워요. 하지만, '재미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좀 더 열심히하자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해주셨어요 진짜 미인은 「이마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것은 분명히 비쥬얼을 칭찬받는데 익숙한 탓이네요.


「초등학생까지는 자주 들었기 때문에 착각하고 있었는데요(웃음).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자신이 그렇게 귀엽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TV를 보면 귀여운 사람은 많이 있고. 그리고 특출난 미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TSUBAKI』의 CM에 출연시켜 주셨을 때도 깨달았어요.」


―일류 모델들과 나란히 출연했었네요. 하지만 세간에서는「코지하루가 열등하다」고 하는 논조는 없었다.


「그건 호의적인 눈이라고요. 골격부터가 전혀 다른걸요. 옆에 서있으면, 공개처형 돼버리는게 아닐까!? 라는 불안밖에 없었어요(웃음).」


―분수를 지나치게 알고 있다고 할까, 자기평가가 낮은 것 같다고도 생각하지만.


「왜냐하면, 저는 그렇게 귀엽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어요. 『이마를 내고, 앞머리를 가운데로 나눈 사람이 진짜 미인이다』라고.

   저는 이마를 내지 않기 때문에 진짜 미인이 아니구나…라고. 그건 이미 옛날부터 계속 생각해왔어요.」


―그 말은 어린 마음에 울려 퍼졌네.


「조금이지만요.」


―사실은 단정한 미인을 동경하고 있어?


「동경이랄까, 자신에게 그런 요소가 없으니까 상상할 수 없지만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생에는 무리. 다음 생을 기대할 수밖에 없어요!」



■코지마 하루나, 25세. 결단할 때―■



―코지하루가 「재미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라는 것은, 팬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근본적으로 있으니까?


「스스로도 즐기고 싶고,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양쪽일까. 모두가 기뻐해주면 저도 기쁘고 좀 더 노력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돌은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천직! 만약 아이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25세의 코지마 하루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 생각할 수 없어요….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되고 싶어라는 희망도 없고. 이 일이 취미의 연장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계속 아이돌을 좋아해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으니까 지금의 자신에게 불만은 없어서」



【AKB48 못다 한 일은 없을지도…하지만, 아이돌은 좀처럼 그만둘 수 없어요 저는, 노래 부르는 것과 춤추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럼, 혹시 아이돌을 그만두게 된다면?


「…음~」


―자신의 AKB48 졸업에 대해서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앗쨩(마에다 아츠코)이 졸업하고, 저도 졸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마리쨩(시노다 마리코)도 토모(이타노 토모미)도, (아키모토)사야카도 모두 굉장히 근사하게 그만뒀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AKB를 졸업하고 하고 싶은 것이 아직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어요. 아이돌 이외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발견된다면 좋겠지만…」


―냉정한 코지하루 분석에 의하면, 언제 졸업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해?


「타이밍을 파악하고 있으면, 마지막까지 남아버릴지도(웃음). 하지만, 지금 바로 졸업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카미나(다카하시 미나미)랑 미이쨩(미네기시 미나미)도 있고, 즐거운 것도 가득 있기 때문에. 

   다만,『ハート・エレキ』에서 센터에도 서게 해주셨고 AKB에서 못다 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아 있던 센터라는 항목에도 체크했네요


「AKB에서는 정말로 여러 가지 일을 시켜주셨기 때문에, 슬슬일까. 하지만, 졸업 준비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요(웃음). 이번에 아키모토씨와 멤버에게도 상담해서 모두의 의견을 들어 보려고 해요.」


―어릴 때부터, 아이돌을 꿈꾸던 소녀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5세의 지금. 하나의 분기점에 서 있다.


「얼마 전에 피-요의 무대를 보러 갔어요. 굉장히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있어서 부럽다~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객석에 있었으니까 춤을 출 수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웃음)


「그때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라고 굉장히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졸업하고 싶지 않은 걸까 라고 깨달았고.

   지금 그만두면 반드시 후회할 테니까 좀 더 계속하자고 생각했어요. 저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아직 보답도 하지 못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돌은 쉽게 그만 둘 수 없어요. 저는, 노래하고 춤추는 걸 정말 좋아하니까. 앗 그래! 이후에 친구 꼬셔서 가라오케 가자~♪」


―그렇게 말하고 아름다운 나비는 팔랑팔랑 어딘가로 날아갔다.